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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를 다녀와서

by 램프지니 2022. 1. 29.

1. 밀레를 꿈꾸던 국민화가

박수근은 12살 때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의 가세가 기울면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고 독학으로 화가들의 화집을 스스로 만들어 참고삼아 공부하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밀레, 마티스, 루오, 모딜리아니 등 서양화가들의 작품들을 따라하고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었습니다. 18세에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입선을 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던 그는 계속해서 매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며 화가의 꿈을 키워갔고,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린 습작들과, 그림공부를 하며 참고로 삼았던 자료들을 통해 화가가 되고자하는 그의 절실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생계를 위해서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했고, 미군부대에서 전시를 열고 컬렉터들에게 그림을 팔았습니다. 박 수근은 미국 개인전을 제안받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안타깝게도 51세에 병으로 갑자기 타계하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965년 타계한 박 수근은 참혹한 시절을 궁핍하게 살수밖에 없었지만, 1970년대말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한 뒤에야 그의 그림은 비로소 인기리에 거래되고 국민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 꿈을 펼치지 못하고 짧은 생을 살았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2. 마티에르, 한국적 정서

마티에르는 화면의 질감을 의미하는 미술용어입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물감을 여러겹 쌓아 올려서 거칠거칠한 질감을 만들어 내고, 형태를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고, 색을 아껴 가면서 그린 것이 특징입니다. 이 경성 평론가는 '서양의 유화 도구로서 우리나라의 생활 감정을 담은 소박하고 깊이감 있는 마티에르를 추구하는 태도가 훌륭하다. 우리나라 유화의 방향이라 할까 새로운 경지를 대변한다'고 호평을 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창호지(창문 용지로 사용되는 까칠한 한지)와 같은 질감을 내고, 더 커다란 화폭들도 역시 화강암으로 만든 조각의 우툴두툴한 표면과 유사한 효과를 자아냅니다. 이러한 그림들은 우리나라의 옛 흙벽, 분청사기, 창호지, 그리고 화강석으로 만든 불상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적인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박수근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추상미술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추상화를 공부하면서도 자신의 화풍을 고수했고 독특한 기법으로 그만의 화풍을 완성했습니다. 전람회에 출품한 그림들만 크게 제작된 걸로 봐서 평상시에 유화물감과 미술재료들을 구입하기 힘들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감을 아끼기 위해서 색이나 형태를 단순화 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곤궁한 생활형편도 그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는 꺾을 수 없었고, 그는 결국 찬란한 예술을 곷피웠습니다.

3.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

밀레처럼 박 수근 화가도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의 소박한 모습들을 진솔되게 표현하였습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평범한 견해를 지니고 있다' 는 그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왔고 이후 가족들과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폐허가 된 서울에서 판잣집에 살면서도 강인하게 삶을 이어가는 이웃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1950년대와 60년대의 우리나라의 사회상, 서울의 풍경, 서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그린 나무에는 잎도 있고 꽃도 피었지만 눈에 잘 드러나지 않았고, 나목으로만 보여졌습니다. PX 초상화부에서 1년 미만이지만 함께 일했던 박완서씨는 훗날 소설가가 되어 박수근을 '나목'으로 표현하였습니다. 1.4 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않고,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낸 그의 모습을 나목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아이를 업고 절구질을 하는 여인이나 동네에 모여 장기를 두는 사람들의 모습과 판잣집의 풍경 등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이웃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렇지만 슬프거나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여유롭고 따뜻한 모습들로 그려져 있습니다. 화가 박수근은 너무 잘 알려진 화가이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 '박수근 전시회'에서 그의 자취를 따라가 보고 그의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왜 그가 나목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꽃을 피워내는 나목처럼 꿋꿋하게 삶을 견뎌냈던 화가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3월 1일까지 전시회를 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꼭 가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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