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ngel of Atelier
학창시절 미술교과서에서 봤었던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 권진규 작가님의 탄생 100주년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오랜만에 시립미술관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올해는 야심차게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큰 프로젝트들을 선보인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권진규님의 단독 전시회가 열린다니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권진규작가님의 작품은 전시회에서 한 두점을 본 적은 있지만 단독 전시회는 볼 기회가 없었는데 알고보니 유족분들이 140여점을 기증하셔서 이루어진 전시라 더 뜻깊게 느껴졌습니다. 원래는 한 독지가에게 미술관 건립을 위해 동생분이 작품을 맡겼는데 미술관은 지어지지 않았고 대부업체 창고에 있던 그림을 1년여의 법정공방 끝에 다시 되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020년에 유족은 이 작품들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을 하게 되었고 이제 시민들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자산이 되었습니다. 유족분들의 결정 덕분에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권진규 탄생 100주년이라는 이름으로 공개가 된 것입니다. 권진규님은 일본에서 무사시노미술학교를 다니셨는데 유명한 조각가 앙트완 브루델의 제자였던 시미즈 다카시에게서 지도를 받았고 공모전이나 전람회에서 입상하며 일본에서 조금씩 인정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건칠기법을 사용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조각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부조작품도 몇점 있었는데 도형적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 '키스'로 유명한 조각가 브랑쿠시의 영향을 받지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존심도 강하고 순탄하지 않았던 작가의 삶이 조각작품에 오롯이 베어있는 것 같습니다. 1959년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고국에서 펼치겠다는 꿈을 안고 한국에 오게됩니다. 이후 작업실을 마련하고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거나 영화소품을 제작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경제사정은 어려웠습니다. 당시 한국은 조각작품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분파가 나뉘어 있는 미술계에 들어가야만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고 수행하듯이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에만 몰두합니다. 고대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동양뿐 아니라 서양의 고대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 고대미술의 원시성과 영원성을 테라코타 작업에 반영했습니다. 60년대 중반쯤 부터는 고대이집트나 아사리아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부조를 제작하였으며 여기에 한국문화의 전통적 요소를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2. 예술적 산보
끊임없이 서양미술의 한국화를 강조하면서 흉상과 자소상, 건칠 불상등으로 작품세계를 넓혀 나갔습니다. 그러나 냉담한 대중적 평가와 해외전시와 동상제작 등 바라던 바들이 계속 무산되면서 좌절을 겪은 그는 1973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장하기로 하자 기뻐했으나 개막식에 참석한 다음 날 생을 마감합니다.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했는 데 일찍 생을 마감하신 작가분의 심정이 어떠했을 지 짐작도 안되지만 이제 이루었다 싶을 때 그냥 다 내려놓으신 건 아니었을지 짐작해 봅니다. 삶의 고뇌를 뒤로 하고 본인의 바램대로 피안을 택하고 파랑새가 되신 작가님이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받는 모습을 보시면서 자존감도 찾으시고 위에서 기쁘게 미소지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으로 귀화했으면 유럽으로 유학도 가시고 보다 편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겠지만 고난의 길을 택하신 권진규님의 업적은 우리나라 미술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불교에 관심이 많으셨던 작가님의 마지막 자화상 작품이 가사를 입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중섭, 박수근, 권진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분들은 생전에는 궁핍한 생활로 너무 힘들게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현실과 타협하고 보다 쉬운 삶을 택할 수 도 있었을텐데 외롭지만 인고의 길을 걸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예술혼을 피우신 그 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돌아가신 뒤에야 제대로 평가와 대접을 받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의 조카 허경회 씨는 "이제 서울 시민이 모두 함께 권진규의 유족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5월 22일까지 전시회를 한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권진규님의 유족으로서 작품을 감상하셨으면 좋겠고 이런 기증이 많이 이루어져서 소중한 유산을 잘 보존하고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건칠을 되풀이 하면서 오늘도 봄을 기다린다. 까막까치가 꿈의 청조를 닮아 하늘로 날아 보내겠다는 것이다"라고 하신 권진규님의 문구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곳에서는 자유로이 날고 계실 것 같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많은 분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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