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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 소름돋는 반전 영화

by 램프지니 2022. 2. 1.

1. 반전영화의 고전

영화 '프리미얼 피어'는 이중인격을 다루고 있는 법정 스릴러 영화입니다. 다중인격(해리성 정체 장애)이라는 소재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끌고 온 스릴러로 반전영화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고전에 속합니다. 제가 본 영화중에 처음으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안겨줬던 영화입니다. 거의 영화 유쥬얼 서스펙트급의 대반전이었습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범죄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고 성선설(맹자가 주장한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는 학설)을 믿는 변호사 마틴 베일(리차드 기어)이 있습니다. 그는 대주교 피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애런 스템플러(에드워드 노튼)가 범인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에서 그의 변호를 자진해서 맡게됩니다. 법정 드라마는 특히나 범인을 밝혀 내기 위해 서로 대립하는 검사와 변호사의 팽팽한 대립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거기에 관객도 마치 배심원이 된 것 처럼 누구의 말이 더 신빙성 있는지 판단을 해보게 됩니다. 여기서는 검사와 변호사가 동료이자 옛연인이었던 관계로 나옵니다. 스토리를 모르고 보는 게 물론 더 재밌겠지만 결말을 알고 봐도 괜챦은 영화입니다. 스토리는 차분하게 흘러가는 데 몰입도가 높은 영화입니다. 줄거리를 모르는 채 물 흐르듯이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소름돋는 전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말을 알더라도 에드워드 노튼의 엄청난 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를 보기 위해 다시 한 번 보기에도 좋은 영화입니다. 미드를 좋아하거나 90년대 영화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드립니다.

2. 신들린 연기

이 영화가 손꼽히는 반전영화로 불리는 데에는 그 당시 신인배우였던 에드워드 노튼의 공이 상당히 큽니다. 리처드 기어가 주인공을 맡고 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천재적인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였습니다. 에드워드 노튼은 이 영화로 1997년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힘든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원래 이 배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그가 고사하는 바람에 오디션으로 넘겨졌습니다. 극중 이름인 '애런'의 말더듬는 연기는 에드워드 노튼이 오디션 때 고안해서 선보인 것으로, 그가 배역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로이가 베일을 벽에 떠미는 장면이나 정체가 밝혀질 때 박수를 치는 장면도 노튼의 애드립이라고 합니다. 기회가 왔을 떄 이를 120% 살려낸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는 '길버트 그레이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볼 때 만큼이나 차원이 다른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소심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애런과 난폭한 다른 인격체인 로이의 180도 다른 모습을 소름끼치게 잘 표현했습니다. 제목이 왜 '프라이멀 피어(원초적 두려움)일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애런이 태생적인 두려움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택한 방법이 그런 애런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마지막 장면의 에드워드 노튼의 표정 연기는 단연 압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6년에 나온 상당히 오래된 영화이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3. 정체성(아이덴티티)

검사측에선 피살자의 가슴에 새겨진 B-32-156이 교회 지하도서관에 있는 '주홍글씨'책 156페이지의 밑줄쳐진 구절을 상징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범인의 살해동기를 밝혀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 내용은 'No man, for any considerable period, can wear one face to himself and another to the multitude without finally getting bewildered as to which may be the true.(어떤 인간도 진실된 모습을 들키지 않고 두개의 가면을 쓸수는 없다) 였습니다. 이 구절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애런의 의도대로 관객은 따라가게 되고 결국에 정신을 차리고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말려들고 난 후입니다. 그만큼 혼을 쏙 빼놓는 연기가 멋진 반전을 만들어낸 영화 '프라이멀 피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반전영화들도 많아졌고 다중인격을 다룬 영화들도 많아졌지만 90년대 이 당시에는 이런 소재가 거의 없을 시절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학설입니다. 하지만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인간은 누구나 악해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에 많이 다루고 있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삽니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면 사회 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할에 맞게,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우리는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2016년에는 23개의 인격을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의 '23 아이덴티티'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다중인격은 영화로 다루기 아주 흥미로운 소재인 것 같습니다. 선해 보이는 인상의 뒤에 악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면 더 섬찟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애초에 선과 악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지도 의문스럽습니다. 선악을 넘어서 선의 실천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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