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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

by 램프지니 2022. 1. 18.

1. 나인틴 헌드레드의 전설(스포 주의)

2002년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엔리오 모르코네의 음악만으로도 귀가 황홀해지는 이탈리아 영화입니다. 2020년 1월, 4K 디지털로 리마스터링 해서 한국에서 최초로 정식 개봉된 영화입니다. 1900년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버지니아호에서 태어났지만 버림받은 나인틴 헌드레드(그가 태어난 해인 1900년이 그의 이름입니다)는 배의 석탄실에서 일하는 흑인 노동자 데니 부드맨에 의해 발견됩니다. 그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지만, 6세때 돌연 그가 죽게 되고 피아노 천재인 아이는 그때부터 배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작곡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27살에 트럼펫 연주자로 들어온 맥스 투니(프루이트 테일러 빈스)를 만나게 되는데 맥스는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됩니다. 나인틴 헌드레드(팀 로스)의 출중한 연주 소문을 듣고 찾아온 재즈 창시자 젤리 롤 모튼(클라렌스 윌리엄스 3세)과 피아노 대결을 펼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주로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해줍니다. 피아노 연주 녹음을 하던날 운명의 소녀를 보게 되고 그녀에게 사랑의 세레나데가 담긴 음반을 전달하려 했으나 실패합니다. 생애 처음으로 육지에 발을 내디뎠지만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세상에 기가질려 다시 배로 돌아갑니다. 시간이 흘러 버지나아호는 고철이 되어 폭파될 운명이었습니다. 친구인 맥스는 배에 있을 그를 찾아내어 육지로 내려가도록 설득하지만 '배에서 내리느니 차라리 내 삶에서 내리겠다' 라고 하며 나인틴 헌드레드는 배에 남기를 간청합니다. 

2. '피아니스트의 전설' 명장면

알렉산드로 마리코의 소설 <노베첸토>가 원작이며 '노베첸토'는 1900년대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라고 합니다. 배안의 세상이 전부였던 최고의 피아니스트 나인틴 헌드레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배에서 버려졌지만 또한 배는 그를 품어주고 그가 피아니스트로서 새삶을 시작하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세개의 명장면이 있는데 첫번째는 폭풍으로 배가 요동칠 때 피아노 브레이크를 풀고 피아노가 굴러가는 상황에서 'Magic Waltz'를 연주하는 장면입니다. 두번째는 연주 녹음을 하던 중 청순한 소녀의 모습에 한 눈에 반하고 즉흥적으로 아름다운 선율의 'Playing love"를 작곡하는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재즈 창시자와의 피아노 대결 장면입니다. 긴장감과 몰입감이 대단한 데 담배 한개피를 올려놓고 시작하는 신들린 연주는 정말 압권입니다. 팀 로스의 눈빛 연기가 좋았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평생을 바다 위에서 피아노만 치면서 보낸 나인틴 헌드레드의 삶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골든글로브시상식 음악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영화음악들이 영화를 더 매혹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육지로 나가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운명을 배와 함께 하기로 하는 결말은 무척 슬프지만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루하지 않고 몰입해서 보게되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특히 피아노를 좋아하거나 재즈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3. 88건반의 무한한 세상

그에게는 버지니아호가 세상의 전부였고 88개의 건반을 가지고 자유롭게 날아올랐던 '피아니스트의 전설' 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그의 대사가 말해줍니다.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 이고 피아노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건 무섭지 않습니다. 무서운 건 세상입니다. 그는 세상이 수백만개의 건반으로 보였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88개의 건반을 가지고 무한한 세상을 연주했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더 유명해지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유한한 세상속에서 무한한 음악으로 자유롭게 살았던 그이기에 바깥세상은 어쩌면 그에게 무의미 했을지도 모릅니다. '너희 육지 사람들은 '왜'라는 질문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해' 라고 한 나인 헌드레드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배에만 있던 사람이 오히려 육지에 내리면 멀미를 하듯이 각자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편안한 곳에서 그냥 하고싶은 것들을 하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더 많은 곳을 가보고 닿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간 꿈같은 느낌입니다. 그 순간 물론 행복했으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좁은 방안에 있더라도 즐기면서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삶이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도 많은 곳을 다녀본 후에 얻은 결론이기는 하지만, 인생에 정답은 없듯이 삶의 방식은 각자의 선택이고 누가 더 나은 선택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무언가만 있다면 그걸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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